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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서 일요일로 예배일을 바꾼 로마 가톨릭

by 귀뚫린종 2024. 9. 3.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예배일을 바꾼 로마 가톨릭

성경에는 제칠일이 안식일로 되어 있다.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창조시대 이래의 제도라는 것이 성경의 주장이다. 그리고 유대교와 일부 기독교 교파에서 아직도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기독교의 전통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일반화되어 왔다. 어떻게 해서 기독교 역사에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전통과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두 개의 전통이 발전되어 온 것인가. 어떻게 해서 기독교 역사에서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전통은 주변 세력으로 밀려나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전통의 일반화되었는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서 신앙의 확고한 원칙으로 규정되어 있는 제칠일 안식일 대신에 전혀 성서적인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고 오히려 이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일요일이 기독교의 주일로 일반화된 그 사실과 배경에 대하여 구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403.1)


 

1. 기독교의 일요일 주일의 기원에 관한 역사적인 주장들


역사상 제칠일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주일로 내세워 온 전통적인 주장들의 대부분은 성서의 가르침이나 명령에 기초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라는 주장의 기초로 성경을 내세우지 않았다. 즉 성경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여 일요일 주일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에 교회법이 일요일을 주일로 주장하는 정당성의 기초였다. (403.2)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중세 가톨릭의 공식 입장을 대변했던 토마스 아퀴나스(Tomas Aquinas, d. 1274)이다. 그는 그의 대표작인 신학대전 에서 단언적으로 주장하기를 기독교의 “일요일 준수는 성경의 넷째 계명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교회법에 기초하였다”2고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같은 주장은 그 때로부터 3세기가 지나간 다음에 나온 가톨릭의 트렌트 공의회의 교리문답(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 1566)에서 그대로 반복되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로 말미암아 촉발된 16세기의 치열한 대 신학논쟁에서 가톨릭을 대표했던 신학자들은 개혁 신학자들을 향하여 “성경만으로”라는 성서 제일주의적 원칙에 철저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개혁 신학자들은 성서 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사실상 가톨릭의 교권적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혁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교권적 전통의 결정적인 실례의 하나가 바로 신, 구교 구별없이 주일로 지키고 있는 일요일 신앙이라는 것이다. 즉 가톨릭 신학자들은 개신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너희 신교도들도 지키고 있는 일요일 주일의 제도가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교회법에 기초한 것이 아니냐”고 반박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일요일 주일 제도의 수립에서 보여 주었던 것처럼 교회의 새로운 의식이나 교회법을 제정할 때는 성경의 주장보다도 교권의 주장에 기초해야 한다는 가톨릭의 주장을 개신교측이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3 (404.1)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전통의 교권적 기원은 루터교회의 신앙고백서인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1530)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들(가톨릭 교회)은 안식일이 주일(일요일)로 바뀌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변경은 십계명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들이 저지른 일로서 안식일을 변경시킨 것보다 더 큰 일이 없다. 그들의 주장대로 교회가 십계명의 하나를 없애고 말았으니 (과연) 교회의 권력이야말로(실로) 크도다”4라고 하였다. (405.1)


마르틴 루터 자신도 분명히 지적하기를 “일요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평신도와 근로계층을 위해 교회가 재정한 것”이라 하였다.5 칼빈도 일요일 주일 제도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제도라기 보다는 인간이 제정한 제도로 보았다. 그는 기독교 강요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 품위와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의 하나로 안식일을 주일이라고 하는 날 곧 일요일로 교체시켰다.”6 (405.2)


종교 개혁시대 이후의 기독교 역사에는 일요일 주일의 기원과 성격에 대한 두 개의 주장이 서로 대립해 왔다. 그 첫 번째는 첫째 날 곧 일요일에 발생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초대교회가 하나님의 권위로 제칠일 안식일을 폐하고 대신에 일요일을 주일로 제정하였다는 주장이다. 교회에 의하여 일요일이 제칠일 안식일을 합법적으로 대신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지지하는 역사상의 교회 지도자들로서는 에라스무스(Erasmus. d.1676),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sa, d. 1605), 보에티우스(Gisbertus Voetius, d. 1676), 존 오웬(John Owen. d. 1683), 조나단 에드와즈(Jonathan Edwards, d. 1758)등이 있고 이 주장을 담고 있는 신앙 고백서들로서는 제2차 스위스 신앙 고백(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6), 도르트 종교회의 신앙 고백(Synod of Dort, 1619),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Westminster Confession 1647) 등이 있다. (405.3)


일요일 주일의 기원과 성격에 대한 두 번째의 주장은 일요일 주일의 제도가 넷째 계명의 제칠일 안식일과 상관없이 제정되었다는 것이다. 일요일 주일은 성경의 제칠일 안식일을 대신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요일 주일은 넷째 계명과 상관없이 철저하게 교회의 필요에 의하여 초대 교회가 제정한 제도라는 것이다. 교인들에게 공공 예배의 기회를 제공하고 노동자들에게 휴식할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교회가 일요일 주일 제도를 제정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일요일 주일이 제칠일 안식일을 대체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일요일을 준수하는 태도가 덜 엄격하고 좀더 자유스럽고 허용적이다. 일요일에 노동과 운동과 오락을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는 역사적인 집단들과 지도자들로는 로마 가톨릭교회, 루터, 칼빈, 윌리암 틴테일(William Tyndale 1536),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d. 1556), 유고 그로티우스(Hygo Grotius, d. 1645) 등이 있다. (406.1)


일요일 주일 제도의 기원과 성격에 관한 두 개의 대립된 주장은 근대에 들어와서도 계속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 역사에 일요일 주일 예배가 시작된 연대와 장소와 원인에 대하여 좀더 분명한 지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그리고 좀더 구체적으로 제기되는 의문은 일요일 예배가 1세기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에 의하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해 성만찬 예식으로 출발한 것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늦은 시기에 다른 곳에서 다른 요인들에 의하여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기독교의 전통이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406.2)

 

 

2. 그리스도의 부활과 일요일 예배의 기원 문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첫째 날인 일요일에 발생하였기 때문에 초대교회가 제칠일 안식일을 폐지하고 그 대신에 일요일 주일 예배를 제도화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첫째 날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라는 직접적인 명령이나 정황적인 암시가 전혀 없다. 신약성경에는 일요일이 일관하여 “주일 중 첫째 날”이라고만 불려지고 있다. 또 신약성경 어느 부분에서도 “주님의 만찬”이 일요일에 거행되었거나 “주님의 만찬”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란 암시가 없다. “주께 받은 것”(고전 11:23)을 전한다고 주장하는 사도 바울 자신도 “주의 만찬”을 교회의 형편대로 어느 날이나 어느 시간에나 어느 장소에서나 거행하였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모일 때마다 자주 “주의 만찬”에 참여하였다. (407.1)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떡과 포도주”에 참여함으로써 즉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고전 11:26).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바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제자들이 “주의 만찬”으로 증거하고 전하고자 한 것은 주님의 부활이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의 기념과 관련하여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주님의 부활은 마땅히 첫째 날 일요일의 휴식과 예배로서만 기념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407.2)


부활 사건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와 우리들의 휴식을 전제로 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우리들의 활동과 작업을 전제로 하는 사건이다. 우리는 두 가지 이유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이유는 부활이 그리스도께서 지상 봉사를 완성하시고 안식으로 들어가신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안식을 끝내고 새로운 봉사를 시작하는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의 예비일 곧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이 지상에서의 구속사업을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시고(요 19:30) 안식일에 무덤에서 쉬시었다가 일요일에 새 일을 위하여 일어나셨던 것이다. 창조 주간의 첫째 날이 하나님께서 창조 사업을 시작하는 날이었듯이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도 첫째날에 그가 부활하심으로써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첫째 날은 쉼의 날이 아니라 일을 시작하는 날이다. 누구에게나 일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일어남” 곧 부활이다. (408.1)


부활의 사건이 일요일의 안식으로 기념되는 것이 타당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첫째 날에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 무덤으로 제일 먼저 달려온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분부하시기를 “다 와서 나의 부활을 기념하고 경축하라” 하시지 않고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마 28:10; 막 16:7) 하셨기 때문이다. 여자 제자들이 첫째 날에 해야 할 일은 쉬는 것이 아니라 “갈릴리로 가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첫째 날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신 일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침례를 주고”(마 28:19; 막 16:15) “내 형제에게 가서”(요 20:17) “내 양을 먹이는” 것이었다(요 21:17). 이처럼 안식일은 쉬는 날이요 일요일은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날이다. (408.2)


신약성경의 시대에도 유월절(오늘날의 부활절)에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 기념되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으니 우리가 그 명절(유월절)을 지키자”고 당부하셨다.(고전 5:7-8). 유월절로 기념되는 그리스도의 사건은 그의 부활이 아니라 그의 죽음이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였다는 사실은 이 절기를 경축하는 문제를 논의한 초창기의 동, 서 교회의 문서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150년 경에 나온 사도들의 서한(Epistle of Apostles)이라는 경외서에서는 “나의 죽음의 기억 곧 유월절을 기념하라”는 권고가 나타나고 있다.7 유월절은 “나의 죽음의 기억” 곧 “그리스도의 죽음의 기억” 이었던 것이다. (409.1)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170년경에 나온 멜리토(Melito)의 유월절 설교(Sermon on the passover)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였다. 이 설교에서 멜리토는 “유월절”(passover)이란 명칭 자체가 “고통당하다”(투 파데인)란 동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잘못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유월”이란 말은 “넘어가다, 경과하다”는 뜻이지 “고통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멜리토가 이렇게 “유월절”의 언어적인 뜻을 잘못 해석한 것은 그 당시의 교회가 일반적으로 유월절을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175년경에 쓴 글에서 이레나이우스(Irenaeus)는 모세가 “유월절이라는 이름으로...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언했다고”까지 주장했다.8 로마의 감독 칼리스투스(Calistus, d. 222년경)도 유월절 설교(Passover Homily)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이 기독교의 유월절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거기(곧 유대교의 유월절)에서는 희생양이 양떼로부터 취해진 반면 여기 (곧 기독교의 유월절)에서는 희생양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거기에는 피의 표상이 있고 여기에는 피와 영으로 가득찬 잔이 있다”고 하였다.9 유월절을 지키는 정신에 있어서 유대교와 기독교는 전혀 차이가 없고 차이가 있다면 누구의 죽음을 기념하느냐 하는 것이다. (409.2)
 어느 다른 교회도 아닌 로마교회 감독의 유월절 설교에서 다른 지역 교회지도자들의 유월절 설교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보다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d. 220년경)와 로마의 히폴리리투스(Hyppolytus, d. 236년경)도 AD 2세기 기간에는 아시아 교회들 뿐만 아니라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교회까지도 어느 날짜에 유월절을 지키든지 날짜는 상관하지 않고(니산월 14일에 기념되든가 아니면 니산월의 일요일에 기념되든가) 유월절로 그리스도의 부활보다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희생을 기념하였다고 증언하였다.10 이들의 증언은 그리스도인들이 유월절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비”를 기념하였다는 유세비우스의 주장을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410.1)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준수했다는 최초의 명확한 언급은 1세기 중엽의 바르나바스(Barnabas, d. 135년경)와 순교자 유스티노스(Justinos Martyr, d. 15년경)에 의해 나타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일요일 준수의 근거로 부활을 내세우고 있으나 단지 그들은 일요일을 준수하는 두 가지 이유 중에서 보다 덜 중요한 두 번째 이유로 부활을 내세웠다. 그들은 일요일로 제칠일 안식일을 대신하게 하는 절대적인 이유로 부활을 내세운 것이 아니었다. 바르나바스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종말을 상징하는 ‘제8일’의 종말적 의의가 일요일 예배를 주장하는 첫 번째 이유였으며11 순교자 유스티노스에게는 창조사건의 출발을 뜻하는 ‘첫째날’의 상징성이 일요일 예배의 일차적 이유였다.12 (410.2)


 

3. 예루살렘 교회와 일요일 예배의 기원 문제


어떤 이유에서건 일요일 예배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은 예루살렘교회인가? 초대교회시대에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인 사도들이 일요일 주일제도를 처음으로 채택했는가? 전혀 불가능한 추측은 아니다. 이렇게 추측할 수 있는 몇 가지 정황이 있기는 하다. 첫째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곳이 예루살렘이고 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신 일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사도들이 부활을 기념하는 일요일 예배를 제도화하고자 했다면 예루살렘교회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둘째는 예배일과 예배제도를 변경하는 일같은 중요한 결정은 기독교의 모 교회이고 지휘부라고 할 수 있었던 예루살렘교회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신약성경 가운데 바울과 유대당 사이에 안식일과 일요일 문제로 논쟁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이것은 사도들의 주도로 예루살렘교회가 일찍부터 일요일 예배를 제도화하였고 바울은 일요일 예배제도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관건은 이러한 추측들을 과연 신약성경이나 초대교회의 역사적 사실로 입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411.1)

 

참고

1. 이 논문은 S. Bacchiochi의 From sabbath to Sunday를 요약한 것이다.
2. Thomas Aquinas, Summa Teologica, 1947. p. 1702.
3. J.N. Andrews and L,R. Conradi, History of the Sabbath, 1912, pp 586~595 ; Daniel Augsburger, “Sunday      in Pre-Reformation Disputations in French Switzerland”, 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 14(1976) :      265~277.
4. Augusburg Confession, Art.28
5. Martin Luther,s Werke, Weirmer, 1888, 6;243, 1. 31.
6.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972, Ⅰ. p. 324.
7. E. Hennecke, ed, New Testament Apocrypha, 1963, I, Pyee.
8. Irenaeus, Against Haresies 4,10,1, ANF.1.473.
9. M.P. Nautin, ed:, Une homelie inspiree du traite sur l.a P

    que d'Hippolyte, Sources chretiennes 27, 1960, p.35.

10. Clement of Alexandria, Chronicon Paschale, PG 92, 81; Hippolytus, Chronicon Paschale, PG 92,79.
11. Epistle of Barnabas, 15,8.

12. 1 Apology,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