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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by 귀뚫린종 2023. 12. 29.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영감의말씀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칭호는 하나님으로서 그가 갖고 있는 품성과 속성을 드러낸다. 인간을 취급할 때 나타난 하나님의 품성은 그가 자신을 계시하기 위해 선택한 여러 가지 이름의 의미를 숙고할 때 분명해진다. 이름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s∨em)은 이따금 “인격”으로도 번역된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막 11:9)란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여호와의 인격적인 대표자로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찬송하리로다”, 율로게메노스(eulogemenos)는 여기서 “찬송받았고, 여전히 찬송을 받고 있는”을 의미한다. 또한 “많은 사람이...그 이름을 믿었으나”(요 2:23)란 말씀이 있다. 이것은 그들이 그의 인격에 관한 계시와 그가 그들 앞에 제시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그들은 그의 인격을 믿었고, 다시 말해 그의 인격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가 어떤 분인지를 나타낸다.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막 6:14)는 그분과 그분이 행한 일에 관한 소식이 널리 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어 성경에 있는 출 3:14, 15; 6:3; 34:14; 렘 10:16; 33:16 등의 구절은 하나님의 명칭이 어떻게 품성을 구현(具現)하고 있는지에 대한 본보기들이다. , “이름”은 원래 “표징” 또는 “표시”를 의미했다. 이름은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의 표시와 표징이다. 그것은 그 인격을 묘사하며, 또한 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헬라어에서 “이름”에 해당하는 오노마(onoma)는 “마음”이란 명사와 “알다”란 동사의 어근과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산스크리트어의 나만(naman), “이름” “알다”를 의미하는 동사 그나(gna)에서 파생한 것이다. 따라서 이름은 무언가를 알려주는 “표징” 혹은 “표시”에 해당한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위격(位格)의 이름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위격들의 품성과 속성을 함축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위격들에 대한 계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칭호는 구속의 계획을 통하여 그가 인간과 더불어 갖는 개인적 관계 속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표현 혹은 계시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는 엘로힘(’Elohim)으로 2,500회 이상 등장한다. 이 단어는 하나님을 가리킬 때 복수형이긴 하나, 전반적으로 단수 동사와 함께 사용된다. 어떤 학자들은 이 용어를 “두려워하다”, “경외하다”라는 뜻의 아랍어 동사와 연관을 짓는다. 이것은 경외받기에 합당한 절대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묘사한다. 이 단어의 어근은 “힘”, “권세”, “능력” 등의 뜻을 내포한다. 이것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께 가장 먼저 사용되었다(창 1:1). 창조 사업은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전능성에 관한 놀라운 표현이다.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은 놀라움, 경외감, 전적인 의뢰심 등의 감정을 인간 속에서 일으킨다. 엘로힘은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들을 통하여 창조 속에 자신을 계시하신 분을 나타낸다.
 명사 엘로힘은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거의 다 복수형으로만 사용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통해서 삼위일체의 교리를 이해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주석 참조)라고 말씀하신 분은 엘로힘이었다. 여기에 사용된 복수형은 분명히 신적 속성의 충만성과 여러 가지 잠재 능력을 시사하는 복수일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동사의 단수형을 일관되게 사용한 것은 신성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다신론에 대하여 질책하는 것이다.
 엘로힘이란 칭호는 하나님을 대변하는 요직에 선 사람들에게 사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모세가 그의 형 아론에게 “하나님[엘로힘]같이”(출 4:16) 되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기별을 주시고, 모세는 그것을 아론에게 주었으며, 아론은 그것을 다시 바로에게 전하였다. 이 사실은 출애굽기 7장 1절에 더욱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엘로힘]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책임을 맡은 이 인물들은, 위대한 능력으로 만물을 창조했으며, 따라서 피조물인 인간의 존경과 경외심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 곧 오직 참되신 엘로힘을 대표하는 자들이었다. 엘로힘은 또한 그 기능에서 하나님의 대표자였던 “재판장”에게 사용되기도 했다(출 21:6; 22:8, 9). 
 단순한 형태로서 초기의 것에 속하는 (’El)은 유일한 참 하나님에 대해 200번 이상 사용되고 있다. 모세, 다윗, 이사야는 특히 이 명칭을 좋아하였다. 때때로 이것은 “그”(the)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었다: “벧엘의 [그] 하나님”(창 31:13; cf. 35:1, 3), “네 아비의 [그] 하나님”(창 46:3). 여기서 다시 능력이 많으신 분 곧 전능자, 유일하신 참 하나님 되신 분이 강조되고 있다. 엘라(’Elah)와 엘로아(’Eloah) 같은 기본적인 형태가 여러 성경 본문 중에 등장하고 있는데, 주 어근에서 파생된 각각의 변형은 동일한 개념인 능력과 권세를 나타낸다. 
 엘 형태는 하나님의 칭호로서 여러 가지 복합어를 구성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이에 대한 용례가 엘-샷다이(’El-S∨addai)다. 이 칭호는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하심과 당신의 백성을 부요케하는 현세적 및 영적 혜택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들은  샷다이 “폭력적이다”, “약탈하다”, “황폐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진 어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 적용시키면 이는 “힘을 나타내다”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것은 “전능자”라는 번역에 표현되어 있다(KJV, RSV, Moffatt, Smith-Goodspeed). 따라서 이 이름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 혹은 풍성하신 분으로 제시한다.
 샷다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의 첫 절 속에 최초로 나타난다(창 17:1, 2, 4, 6):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이 이름은 창세기 28장 3절에서 다시 발견되는데, 여기서 이삭은 엘-샷다이가 야곱을 축복하셔서 그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엘-샷다이의 유사한 축복이 창세기 35장 11절 43장 14절, 49장 25절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구절은 하나님이 행사하는 풍성함의 의미를 시사한다: 능력과 권세의 하나님 , 그러한 것을 부여하실 수 있는 한없는 부요의 하나님 샷다이. 
 구약에서 가장 흔한 하나님의 칭호(약 5,500번 사용됨)는 신성한 단어 YHWH(때때로 JHVH으로 음역됨)이며, 이것은 테트라그람마톤(Tetragrammaton)이라고 하는데, 그 문자적 의미는 “네 개의 문자”로서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개의 자음을 가리킨다(고대 히브리어는 오직 단어의 자음으로만 기록되었다). 「제임스왕역」은 여호와를 일반적으로 “LORD”로 번역하는데, 이렇게 작은 대문자(small capital)를 사용하여 “Lord”로 번역된 단어와 구분짓는다. 유대인들은 YHWH라는 호칭을 너무 거룩하게 여겨 성경을 읽을 때조차도 이 단어를 발음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지중에라도 모독하지 않기 위함이었다(참조 레 24:16). 그 대신에 그들은 그것을 아도나이(’Adonai)라고 읽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그 발음을 야훼(Yahweh)로 생각해 왔지만 진짜 발음은 잊혀졌다.
 그리스도 이후 몇 세기가 지난 다음, 마소라 학파라는 어떤 유대인 학자들이 구어(口語)적인 언어에 대한 지식을 보존하려는 노력으로 기록 히브리어(written Hebrew)에 모음을 덧붙였다. 그때에 그들이 자음 YHWH에 아도나이라는 모음 음가를 더했다. 이렇게 해서 그 단어는 문자적으로 여호와(Yehowah)라고 읽혀지게 되었고, 영어로는 “Jehovah”로 음역되었다. YHWH의 원래 발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단어를 아도나이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야훼(Yahweh)라는 단어와 만날 때 히브리어에 식견이 있는 독자라면 아도나이라고 읽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마소라 학자들이 실제로 표기한 대로 “Jehovah”(출 6:3; 시 83:18; 사 26:4 등)로 음역하거나 LORD로 빈번하게 번역하였다.
 학자들 사이에서 YHWH의 기원, 발음, 의미에 관해 상당한 차이점을 보여왔다. 아마 YHWH는 히브리어 동사 “있다”의 한 형태로서 “존재하시는 분” 혹은 “자존자”(自存者)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동사 형태가 사역형(causative)이기 때문에 “존재케 하는 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혹은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Ehyeh ’as∨er ’ehyeh)라는 구절(출 3:14)에 비추어 해석해 볼 때, “계시는 이 혹은 계실 이”를 의미하며, 그 결과 “영원자”가 된다. 따라서 LORD(「제임스왕역」과 「개정표준역」) 혹은 Jehovah(「미국표준역」)로 번역된 칭호는 자존과 무시간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야훼는 예배자의 상상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이방인의 신들(참조 왕상 18:20~39; 사 41:23~29; 렘 10:10, 14; 고전 8:4)과 대조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 곧 생명의 근원이시다. 이 이름은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계시되었다(출 3:14). 이것은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구원을 예비하신,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다. 여타의 하나님의 칭호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자기 백성과의 개인적 관계 속에서 히브리인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이름들이 갖는 거룩성에 대한 깊은 경외심과 그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자 하는 열망은 서기관들에게 감동을 주어 그 칭호들을 성실하게 전사(轉寫)케 했다. 그들은 신성한 문자들을 기록하기 전에 잠시 멈추곤 했다. 여타의 모든 이름들 위에 있는 그 이름, 곧 하나님의 인격적 이름으로 간주된 것은 야훼였다.
 구약에 흔히 등장하는 표현으로 “여호와의 말씀”이 있다. 이것은 창세기 15장 1절에서 발견되는데 그 장에서는 엘로힘이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여호와는 언약적 이름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과 교통하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신 이름이다(참조 창 18:1, 2; 28:13~17; 출 33:9~11; 34: 6, 7). 
 야훼란 이름은 자기 백성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하시고 붙드시는 능력을 좀 더 충만하게 드러내고자 할 때 복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한 것으로 여호와-이레(Yahweh-yir’eh)가 있다. 문자적 의미는 “여호와께서 보시리라”(창 22:14)로, “하나님이 준비하시리라”는 뜻을 갖고 있다(8절, 영어의 “준비하다”[provide]는 “앞을 내다보다”[foresee]를 의미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험은 하나님이 나타나실 것인가의 여부보다도 그가 준비하실 것인가의 여부에 놓여 있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속죄에 필요한 희생물을 준비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담고 있다. 이 복합적 이름은 구속의 계획의 기초에 놓여 있다. 
 에스겔 48장 35절(「제임스왕역」)에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표현이 있다. 히브리어로 읽으면, 야훼 샴마(Yahweh s∨ammah)이다. 이것은 당신의 백성들 중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시사한다. 이것은 하갈이 표현했던 엘 라이(’El ra’i), “하나님이 나를 감찰하신다”(창 16:13)와 거의 같은 칭호이다. 이와 유사한 히브리어 형용구들이 있다: 야훼 로이(Yahweh ro‘i), 야훼 내 목자(시 23:1); 야훼 로페카(Yahweh rop’eka), 야훼 너의 치료자(출 15:26); 야훼 치드케누(Yahweh s.ideqenu), 야훼 우리의 의(렘 23:6); 야훼 샬롬(Yahweh s∨alom), 야훼-평화(삿 6:24). 이 모든 칭호는 구속의 계획 안에 하나님의 역할을 표현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른 이름들은 신앙인의 싸움을 표현한다: 야훼 닛시(Yahweh nissi), “야훼 나의 깃발”에서 닛시는 “앞뒤로 움직이다”라는 동사 나사스(nasas)에서 유래했다(출 17:15). 야훼 체바오트(Yahweh s.eba’ot), “만군의 야훼”라는 칭호(삼상 1:3에 처음으로 등장한다)는 그분을 모든 피조물의 군대장관 곧 그의 피조물을 최종적 승리로 이끄실 분으로 제시한다(참조 롬 9:29; 약 5:4). 이 칭호는 때때로 엘로힘-차바오트(’Elohim-s.aba’ot)로 등장한다(시 80:7, 14, 19; 암 5:27). 
 “만군의 여호와”라는 칭호는 아마도 하나님의 칭호들 중에서 가장 장엄한 칭호일 것이다. 이것은 온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장악과 통치권을 가리킨다. 이것을 시사하는 아름다운 예가 시편 24편 9, 10절의 말씀이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참조 삼하 7:26; 시 46:7; 48:8; 슥 2:9). 
 히브리어 아돈(’adon)은 구약에서 약 300회 발견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주”(lord) 또는 “주인”(master)으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재산의 소유자, 집안의 가장, 도백(道伯) 등에 사용되었다. 또한 이것은 “sir”(창 43:20)와 “owner”(왕상 16:24)로 번역되기도 했으나 “주” “주인”이 가장 흔한 번역이다. 이것은 지위, 명예, 권위를 지닌 칭호이다(창 18:12; 24:12, 42; 출 21:4; 민 11:28; 삼상 1:15 등).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아도나이(’Adonai)의 형태를 가진다. 그 첫 번째의 경우가 창세기 15장 2절 18장 3절에 있다. 이것은 그의 주권, 복종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등을 제시한다. 이것은 때때로 야훼와 쌍(雙)을 이루어 두 용어가 여호와 하나님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출 23:17; 34:23), 이는 또한 엘로힘의 형태와 함께 사용되어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으로 번역된다(시 35:23; 38:15). 「제임스왕역」에서 복합형으로 사용하고 있는 여러 가지 형태를 참조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의 언어, 사본, 정경”란에 기재된 표를 참조하라. 아도나이 칭호는 “온 땅의 주”와 같은 표현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수 3:11, 13; 시 97:5; 슥 4:14; 6:5; 미 4:13). 
 다른 두 개의 칭호가 “지극히 높으신 분”, “높으신 분” 등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 하나가 엘룐(‘Elyon)으로 “일어나다”는 동사에서 파생했다. 사용된 예로는 창세기 14장 18~20절, 22장; 민수기 24장 16절; 사무엘하 22장 14절; 시편 7장 17절; 9장 2절; 18장 13절; 21장 7절; 46장 4절; 47장 2절 등이 있으며, 예레미야애가 3장 38절에 최종적으로 등장한다. 「제임스왕역」에서 “지극히 높으신 주”라는 칭호와 이와 유사한 구절(시 56:2; 71:19; 92:8; 93:4; 미 6:6)은 히브리어 마롬(marom)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별개의 어근인 “일어나다”, “높여지다”에서 파생한 것이다. 
 “주”, “소유주”, “통치자”를 뜻하는 단어 중에 바알(ba‘al)이 흔히 사용되는데, 이것은 지방의 이교 신들에게 붙인 이름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평판이 나쁜 명칭이었다. 이것은 여룹바알, 에스-바알, 므립-바알 등과 같이 복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여호와에게도 적용되어 “남편”으로 번역되었다(참조 사 54:5; 참조 욜 1:8, “남편”). 그리고 하나님의 신부인 교회를 가리키는 여성형이 발견된다(참조 사 62:4, “뷸라”).
 이스라엘의 “강한 자”(사 30:29 등), “반석”(삼하 23:3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 엘-추르(’
El-s.ur)와 같은 칭호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들을 고유 명칭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출처: 3ams.com